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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과학 에세이
천문대의 시간 천문학자의 하늘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볼 수 있었던 은하수의 화려한 모습과 초롱초롱한 별들을 기억한다. 이제는 도시의 밝은 불빛 때문에 보현산천문대에서도 이러한 밤하늘 풍경을 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종종 멋있는 은하수를 볼 기회가 있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때면 괜히 카메라를 들고 나와 하늘 사진을 찍는다. 결국 천문학은 별을 봐야 제 맛이다.
글, 사진. 전영범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천문대의 하루, 별 보는 즐거움

천문대의 긴 하루는 아침 해가 떠야 끝난다. 나는 1992년 보현산천문대 건설이 시작되는 시점에 천체사진 관측 전문가로 합류했고 필요한 장비를 갖추는 일부터 시작했다. 사계절 풍경과 밤하늘을 보면서 보현산 꼭대기에서 생활한 지도 벌써 30년이다. 해발 1100m가 넘는 천문대에서 근무하면서 얻는 가장 큰 즐거움은 별을 보는 것이다. 밤에 연구실만 나서도 별을 볼 수 있어서 달이 없는 맑은 날이면 참지 못하고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다. 추운 날씨에 별을 보려고 왜 그 고생을 하나 싶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별을 보는 즐거움을 추위가 막을 수 없다.
별을 보는 그 자체가 그냥 좋다. 더불어 밤하늘 천체를 찾아내고, 기록하는 기술이 더해져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좋은 작품을 얻으려 노력하듯 밤하늘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낸다. 더 새로운 모습을 보고 싶고, 더 멋지게 담고 싶은 욕심이 더해져 한밤의 추위를 이겨내고, 본 걸 또 보고 반복한다.
천문대가 사람이 적은 오지에, 그것도 높은 산 정상에 있는 이유는 도시의 불빛을 피하기 위해서다. 지금도 보현산천문대에는 가로등이 없어서 밤에 밖으로 나가려면 손전등이 필요하다. 보현산천문대의 1.8m 망원경은 계산상으로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한계등급인 6등성 별보다 400만 배 이상 어두운 별까지 관측이 가능하다.
하늘이 충분히 어두워지면 본격적인 관측을 시작하는데 이제부터는 지루함과의 싸움이다. 연구 주제에 따라서 밤새 정신없이 천체를 찾아다녀야 하는 경우도 있고 한두 대상을 밤새 반복해서 관측하기도 한다. 내가 주로 하는 변광성 연구는 같은 대상을 반복해서 보는 지루한 관측이다. 하지만 관측 중에 시상이 바뀌거나 초점이 변하거나 날씨가 달라지면 좀 복잡해진다. 상황을 잘 살펴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영상을 1장이라도 더 많이 얻으려고 노력한다.

우주를 향한 끝없는 질문

천문학은 실험이 없다. 대신 관측을 한다. 이는 천문학이 다른 자연과학과 구분되는 중요한 요소다. 우리가 변화를 감지할 수 있을 만큼 빠른 기간 안에 이루어지는 천문 현상이 극히 드물다. 또한 대부분 대상이 너무 커서 지구에서는 관련된 실험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천문학에는 우주라는 거대한 실험실이 존재한다. 탄생 이후 지금까지 우주가 수행한 엄청나게 많은 실험의 결과가 하늘에 있다. 우주의 나이는 오차를 내포하지만 최근 138억 년(또는 137억 년)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우주가 태어난 뒤 138억 년 동안 별과 은하의 탄생 등 수 없이 많은 실험이 이루어졌고 지금도 진행된다. 그리고 실험의 결과가 밤하늘을 아름답게 빛내며 결과의 많은 부분은 여전히 숨어서 찾아주기를 기다린다. 이런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우리 역시 명백하게 그 실험의 결과물로 탄생했다. 우주의 원소 중 수소와 헬륨을 제외한 모든 원소는 별이 탄생하여 살아가면서 만들어졌고, 그 중에서 철보다 무거운 원소들은 마지막 죽는 초신성폭발 과정에 만들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원소가 다시 별을 만드는 재료가 되어 수소와 헬륨보다 무거운 중원소가 점점 많아졌다. 그러니 우리도 결국 별에서 온 셈이다.
천문학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진 우주를 향한 호기심에 답하고 우주로 진출하고자 하는 욕망에 가능성을 키워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천문학자의 소명이자 내가 속한 한국천문연구원의 중요한 임무다. 이제는 과학과 기술이 크게 발전해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많은 천문현 상의 관측이 가능해졌다.

여전히 도전할 연구 대상은 많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만 해도 1000억의 1000억 개가 넘는다. 은하 하나는 1000억 개 이상의 별을 가지고 있는데 그러한 은하가 우리 우주에는 1000억 개 이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연구자는 1조의 1조 개라고도 한다. 이들 별이 각자 모여서 만든 그룹, 즉 성단이나 은하, 은하단, 초은하단이 있고 각각의 별은 죽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한다. 이제는 별들 주위의 행성까지 찾는다, 겨우 수 천개 남짓 찾았을 뿐이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별에 행성이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별 주변 행성은 또 얼마나 많을까? 우리 지구가 속한 태양계에는 행성만 해도 지구를 포함해 8개이고 명왕성과 같은 왜소행성과 위성의 숫자는 이제 세기도 어렵다. 게다가 소행성과 더 작은 물질들도 수없이 많다. 따라서 우주에는 적어도 별의 개수 이상의 행성이 존재하고 그 수에 억을 곱할 정도로 많은 별의 잔해가 있다고 보아도 과하지 않다. 천문학은 문자 그대로 하늘을 이야기하는 학문이다. 인류는 탄생 이래로 하늘을 바라보며 끊임 없이 호기심을 키웠다. 천문학자로서 나는 “우리는 우주의 근원에 대한 근원적 의문에 과학으로 답한다”는 문구를 되새긴다.

전영범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천문학자이자 천체사진가다. 해발 1124m 보현산 정상에 천문대를 건설하던 1992년부터 지금까지 보현산천문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현재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변광 천체 탐색 연구를 하고 있다. 120여 개의 새로운 소행성을 발견해 우리 과학자 10명의 이름을 붙였고, 1만 원권 지폐 뒷면에 있는 1.8미터 망원경의 도안 사진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