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우주탐사의 역사는 1903년 소련 과학자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의 〈반작용 모터를 이용한 우주 공간 탐험〉이라는 논문이 출간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미국의 로버트 고다드가 1926년 3월 16일에 최초로 액체 연료 로켓 발사 실험에 성공했는데 성인 팔 하나 정도의 크기를 가진 ‘네루’ 로켓은 약 2.5초 동안 비행하여 12.5m의 고도에 도달했다. 이는 액체 연료 추진의 가능성을 증명한 중요한 실험이었고, 1959년에 설립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고다드 우주 비행 센터의 이름 역시 그를 기념하여 명명되었다.
나치 독일의 과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은 고다드의 이론을 응용하여 1934년에 2,000m 고도에 도달할 수 있는 로켓을 개발하고 1942년에는 대형 로켓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1944년 완성한 V-2 로켓은 런던을 폭격하는데 사용했다. (흔히 최종 목적지가 우주인 경우는 로켓, 최종 목적지가 지구인 경우는 미사일로 구분한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독일에 먼저 진입한 소련군은 폰 브라운의 로켓 연구소인 ‘페네뮌데’를 점령하고 제조 중이던 V-2 로켓과 부품 등을 입수해 세계 최초 인공위성 궤도에 도달한 로켓 R-7 개발에 성공했다. 이로써 미국과의 우주탐사 경쟁에 앞서 나갈 수 있었다.
1957년 소련은 R-7 로켓을 이용하여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해 우주탐사 경쟁의 방아쇠를 당겼다. 미국은 이듬해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던 우주 관련 연구 조직을 통합하여 NASA를 설립하였고 폰 브라운을 중심으로 익스플로러 1호 발사에 성공하며 우주탐사 경쟁이 본격화됐다. 이후 1961년 4월 12일 소련이 최초의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 1호 발사에 성공하게 된다. 보스토크 1호에는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가 된 유리 가가린이 탑승하였으며 1시간 46분 동안 우주여행을 한 후 지구로 귀환했다. 유리 가가린은 “우주에서 지구는 푸른색이다” 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주탐사 경쟁은 이제 달로 집중됐다. 당시 소련에게 우주 개발과 관련된 모든 ‘인류 최초’ 타이틀을 빼앗긴 미국은 아폴로 계획에 박차를 가하며 마침내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의 착륙선 이글호가 고요의 바다에 착륙하게 되었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성조기를 세우고 달의 진동을 측정하는 월진계와 지구-달 사이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레이저 반사판을 설치했다. 아폴로 11호의 선장으로 인류 최초로 달에 첫발을 내딛게 된 닐 암스트롱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
이후 아폴로 12호부터 17호까지 총 6차례에 걸쳐 12명의 우주비행사가 달에 착륙했으며 382kg의 달 표본을 지구로 운반했다. 아폴로 계획 이후 소련은 샬루트와 미르 우주정거장을 건설하여 거대하고 거주가 가능한 우주과학실험실을 마련했다. 미르(Мир)는 러시아어로 평화를 의미하며, 1986년에 발사해 2001년에 다시 지구 대기로 재진입 하면서 수명을 다했다. 미르는 운용기간동안 지구를 9만 바퀴 이상 순회하였고, 러시아 우주인 42명, 미국 우주인이 7명 그리고 다른 여러 나라의 우주인도 55명이 방문하여 2만여 회의 실험을 진행했다. 끈질긴 탐구 정신이다.
미국은 달 탐사와 더불어 행성에 대한 탐사 계획을 진행했다. 1976년에 이르러 두 대의 바이킹 호가 처음으로 화성 표면에 착륙했고, 2004년 쌍둥이 로버(탐사 로봇) 오퍼튜니티와 스피릿이 화성에 물이 존재하는지를 탐사했다. 이후 2012년 화성에 착륙한 큐리오시티는 화성의 기후와 지질을 조사하고, 생명체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2018년에는 인사이트가 화성의 엘리시움 평원에 착륙해 화성 내부 구조 탐사 중, 최초로 화성의 지진을 포착하기도 했다.
미국이 화성과 달에 집중하는 동안 소련은 금성 탐사에 집중했다. 1961년 2월에 최초의 금성 탐사선인 베네라 1호 발사를 시작으로 5년 후 발사된 베네라 4호가 금성 대기의 90%가 이산화탄소이며 대기 온도는 최대 500도씨이고 대기압은 약 90기압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에도 소련은 베네라 시리즈를 계속 금성에 보내어 대기의 성분을 분석하고 환경 정보를 종합하여 금성에는 생물이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1983년 6월에는 베네라 시리즈의 마지막 탐사선인 15호와 16호를 발사해 금성을 선회하며 금성의 전체 지도를 제작하였다.
이후에도 NASA를 비롯하여 유럽우주기구(ESA), 일본항공우주기구(JAXA) 등은 소행성 탐사를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가 소행성 탐사를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태양계의 기원과 생명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이다. 미지의 영역 그 자체인 소행성을 탐사하기 위한 인류의 피나는 노력의 단편적인 사례 중 하나가 일본의 이토카와 탐사 이야기다.
2003년 5월에 일본에서는 지구 접근 천체인 소행성 이토카와를 탐사할 목적으로 제20호 과학위성을 발사하였다. 하야부사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해진 이 탐사선은 이토카와에 착륙하여 샘플을 채취한 후 지구 근처까지 와서 샘플을 지구로 투하 한 다음 다시 다른 소행성을 찾아 탐사를 떠날 계획이었으나 2003년 태양전지판에 큰 손상을 입고 발전량이 감소돼 여러차례 통신 두절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연료 분사등을 통해 자세를 잡아 가며 2년간 태양을 두 바퀴 돌아 2005년 6월 소행성 이토카와에 도착했다. 모두가 우주 미아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하야부사는 임무를 마치고 2010년 6월 13일 지구로 귀환했다. 당초 예정보다 3년이나 늦었고, 항행 거리도 두배 이상 늘어났지만 하야부사는 소행성 이토카와의 토양 샘플을 담은 캡슐을 분리시켜 호주 우메라 사막으로 성공적으로 보냈다. 일본과 세계 여려 나라의 연구진들은 하야부사가 지구로 가지고 온 이토카와의 샘플을 분석하여 45억년 전 태양계 탄생 당시의 생성 과정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야부사는 출력이 낮은 하지만 수명이 긴 이온 엔진으로 우주를 장시간 탐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사상 최초로 소행성의 시료를 지구로 운반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또한 7년 동안 60억km를 비행하였고, 우주 미아 상태에 빠졌던 탐사선을 기적적으로 귀환 시켜 우주탐사에는 실패에 굴하지 않는 인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