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약산 억새를 만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중 가장 이상적인 코스를 꼽으라면 단연 얼음골 케이블카를 타고 천황산 산정 턱밑까지 이동한 뒤, 억새길을 따라 재약산으로 가는 코스다. 해발 1,000m가 넘는 천황산까지 올라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을 뿐 아니라,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동안 영남알프스의 절경을 편하게 두 눈에 담을 수 있어 더욱 좋다. 케이블카 상부 역사에서 재약산까지는 크게 오르고 내리지 않는 능선길이 이어진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300m 남짓 완만하게 오르막을 따라가면 하늘정원에 닿는다. 말 그대로 하늘과 맞닿은 곳이다. 해발 1,000m가 넘는 곳에 위치해 있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상부역사를 벗어나면 공기부터 다르다. 온몸으로 전해오는, 도시의 답답함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이 시원한 바람 역시 이곳의 풍광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하늘정원에는 산뜻한 나무 덱이 깔려있다. 밀양시민들은 이 길을 ‘하늘사랑길’이라 부른다. 길이 완만하고 널찍해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다. 걸음이 더해질수록 영남알프스의 풍경도 그만큼 풍성하게 다가선다.
하늘사랑길에는 영남 알프스의 멋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여럿 마련됐다. 그중 녹산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단연 절경이다. 하늘사랑길의 끝점이기도 한 녹산대 전망대에서는 천황산과 재약산은 물론 백운산의 명물, 백호바위도 시야에 들어온다. 백호바위는 밀양 얼음골의 수호신으로 불리는 바위로, 거대한 암벽이 정말이지 엎드려 있는 호랑이의 모습을 꼭 빼닮았다.
하늘정원을 출발점 삼아 천천히 걸으면 재약산까지 대략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코스 대부분이 능선을 따라가기 때문에 크게 힘들지 않다. 걷는 내내 길동무가 되어주는 은빛 억새는 이 길을 걷게 하는 가장 큰 이유. 바람결에 서걱대는 맑은 억새 소리도 투명한 가을과 잘 어울린다.
사방이 억새로 둘러싸인 천황재에는 넓은 덱이 있어 잠시 쉬어가기 좋다. 천황재에서 재약산 가는 길은 험하지 않아도 계속 오르막이라 땀깨나 흘릴 각오는 해야 한다. 하지만 정상에 이르면 흘린 땀이 전혀 아깝지 않은 풍경이 선물처럼 주어진다. 사자평 습지가 주인공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화전민이 불을 놓아 나무를 태우고 밭을 일구면서 억새 평원이 된 곳이다. 2006년 습지 보호 지역으로 지정된 뒤, 지속적으로 관리하면서 습지 생태계가 살아났다. 습지 한가운데 흐르는 실개천에 버들치가 헤엄치고, 탐방로에는 고라니와 삵의 배설물이 눈에 띈다. 무분별한 출입으로 습지 생물의 터전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무 덱도 놓았다. 산들늪이라고도 부르는 사자평 습지는 우리나라 산지 습지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얼음골 케이블카 탑승료는 성인 1만 5,000원, 청소년 1만 3,000원, 어린이 1만 2,000원이며, 상행 첫차는 오전 8시에 출발한다.
하산 코스는 표충사 방향으로 잡으면 된다. 표충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죽림정사 터에 세운 표충서원의 사당, 표충사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유교를 대표하는 서원이 사찰에 자리한 건 임진왜란 당시 의승병을 일으켜 활동한 사명대사의 영향이 크다. 표충사 일주문 지나 만나는 표충서원의 사당에는 여전히 사명·서산·기허당 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표충서원을 지나 사천왕문으로 들어서면 사찰 영역이다. 삼층석탑을 시작으로 대광전, 명부전, 팔상전 등 많은 전각이 다소곳이 자리해 있다. 대광전 맞은편에 큼직한 누각이 자리한 게 의아한데, 우화루라 이름 붙은 이 누각은 본래 표충사를 출입하던 곳으로 길을 새로 내면서 조금은 어색한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사명대사가 사용했던 염주와 장삼 등을 전시한 표충사 유물박물관도 놓치지 말고 찾아봐야 할 곳이다. 표충사 입장료는 성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500원이며, 주차료 2,000원은 별도다.
밀양의 가을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영남루다. 밀양강 절벽 위에 우뚝 선 영남루는 진주의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누각 가운데 하나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이 웅장한 건물은 조선시대 손님이 머물던 밀주관의 부속건물이었다. 고려시대 처음 지어진 영남루는 이후 여러 차례 증축을 거쳐 지금에 이른다. 현재의 건물은 1844년 지어진 것으로 전한다.
영남루는 밀양 주민들이 즐겨 찾는 최고의 휴식공간이다. 시원한 나무 바닥에 앉아 밀양강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한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다. 보물로 지정된 건물이다 보니 동시에 80명 이상 오를 수 없지만, 이용에 큰 제한이 있는 건 아니다.
영남루에서 바라보는 풍경만큼 영남루 자체가 지닌 아름다움도 매력적이다. 특히 시선을 끄는 건 많은 현판들. 누각 중앙에 걸린 영남루 현판은 구한말 당시 명필로 이름 높은 성파 하동주 선생이 쓴 것이고, 내부의 영남루 현판은 1842년 밀양부사를 지낸 이인재의 작은 아들 이현석 이 일곱 살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영남루에는 영남제일루, 교남명루, 강좌웅부 등 많은 현판이 남아있다. 밀양교를 지나 밀양강 둔치에서 보는 영남루의 모습도 일품인데, 밀양강과 어우러진 영남루 야경은 밀양 8경 가운데 제1경으로 꼽는다.
가을빛을 좆아 밀양을 찾았다면 밀양강변에 조성한 산외면 해바라기 단지도 놓치기 아깝다. SNS에서는 이미 핫 플레이스로 유명한 이곳은 밀양강 정비사업으로 방치됐던 하천부지를 산외면 주민들이 손수 가꿔 관광명소로 탈바꿈 시킨 곳. 1만 5천여 평의 부지에 해바라기와 백일홍, 댑싸리, 코스모스가 어우러져 가을이면 말그대로 꽃 대궐을 이룬다. 황금빛 해바라기가 넘실대는 단지 내에 예쁜 포토존도 마련돼 있어 멋진 기념사진을 남기기에도 좋다. 9월 말부터 노란 꽃잎을 피우는 해바라기는 10월 중순 절정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