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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과학 에세이
우리를 있게 해준 중력의
소중함에 대하여
지구에 생명이 탄생할 수 있게 해준 행운이라고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 지구에게 에너지를 비춰주고 있는 태양, 그리고 그 태양에서 지구가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다는 행운 정도가 생각날 것이다. 그에 비해서 지구 곁에 달이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놀랍게도 오늘날의 지구가 존재할 수 있는 건 달의 중력 덕분이다.
글. 지웅배 연세대 은하진화센터 연구원

바다 생물을 뭍으로 끌어낸 달

달은 지구의 반의반, 4분의 1 정도 사이즈다. 목성이나 토성 등 지구보다 훨씬 더 거대한 행성이 우리 달에 비해 더 작은 크기의 돌멩이들을 위성으로 거느리고 있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지구는 사실 자신의 덩치에 비해서 꽤 부담스러운 자연 위성을 하나 거느리고 있는 셈이다. 지구와 달 사이 거리는 약 38만km 정도. KTX가 최고 속도로 쉬지 않고 지구에서 달까지 간다고 하면 약 50일 정도 걸리는 거리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천체 하면 떠 오르는 게 달이지만, 흥미롭게도 지구를 제외한 나머지 태양계 일곱 행성이 지구와 달 사이에 쏙 들어온다. 이처럼 지구와 달은 실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두 천체가 주고받는 중력은 아주 효과적이다. 특히 우리가 매일 달에 의한 중력을 체감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바닷가에서 만나는 밀물과 썰물, 조석 현상이다.
밀물과 썰물, 조석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지구와 달이 점이 아니라 부피를 갖고 있는 물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소 지구와 달의 움직임을 간단하게 묘사하기 위해서, 두 천체를 질량이 모두 모여 있는 점 질량으로 간주하고 기술할 때가 많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두 천체 모두 큰 덩치, 부피를 갖고 있다. 그래서 지구의 각 부분에서 느끼는 달에 의한 중력은 조금씩 그 세기가 다르다. 달을 향하고 있는 쪽의 지구에서 느끼는 달의 중력이, 달을 등지고 있는 지구 반대편에서 느끼는 달의 중력보다 더 강하다. 이처럼 각 부위별로 느끼는 중력이 달라지는 효과를 차등중력이라고 한다.
단단한 땅에 비해서 바다는 달의 중력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렇게 달에 의한 차등중력으로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면서, 해안가에서는 바다와 육지를 이어주는 중간 단계인 갯벌이 형성된다. 지금으로부터 약 4억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지구의 동물들은 대부분 바닷속에서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바닷가 근처에 살던 일부 생물들은 밀물과 썰물을 만나면서, 우연히 바닷물이 모두 빠져나간 갯벌 위에 노출되기 시작했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아가미가 아닌 폐로 호흡을 하는데 성공한 개체들은 갯벌 위에서도 고스란히 생존해 계속 후손을 남기게 된 것이다. 갯벌을 통해 바닷속에 갇혀 있던 지구의 생명들이 육지로 올라오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달은 마치 인어공주에게 다리를 만들어주었던 동화 속 마녀와 같은 역할을 했던 셈이다.

달이 있기에 가능한 지구의 계절 변화

지구에 이런 거대한 달이 만들어지게 된 이유는 수십 억 년 전 화성 정도 크기의 테이아라는 천체가 어린 지구와 큰 충돌을 했기 때문이다. 그때 생긴 파편이 지구 주변을 맴돌며 다시 뭉쳤고 그것이 달이 되었다고 추측한다. 이 충돌은 지구의 자전축이 약 23도가량 기울어지도록 만들었다. 자전축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덕분에, 지구의 각 지역에서는 위도에 따라서 시기별로 태양 빛이 들어오는 양이 달라졌고, 각 지역에서는 계절 변화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거대한 달이 지구 주변을 돌면서, 강한 중력으로 지구를 붙잡고 있는 덕분에 큰 충격을 겪은 후에도 지구의 자전축이 크게 요동치지 않고 계속 일정한 각도로 기울어져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사실 지구의 자전축도 약 26,000년을 주기로 아주 느리게 방향이 변화하는 세차 운동을 하며 조금씩 방향이 바뀌고 있다. 그런데 만약 육중한 달이 지구 곁에서 붙잡고 있지 않았다면, 큰 충돌을 겪은 지구는 심하게 요동쳤을 것이며 지금보다 더 극단적이고 불안정한 계절 변화로 생태계 조성이 어려웠을 수 있다. 단 한 끗 차이로, 달을 만들어준 대충돌은 지구에게 절멸이 아닌 생명을 안겨준 셈이다.

인류의 과학도 결국 달 덕분에 가능했다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은 머리 위로 떨어진 사과를 보며 궁금증이 생겼다. 그는 ‘이렇게 작고 가벼운 사과도 지구의 중력에 의해 땅으로 떨어지는데,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달은 어떻게 땅으로 떨어지지 않는 걸까?’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고민을 시작했다. 그리고 달이 지구의 중력에 붙잡혀 있지만 지구 주변을 둥글게 맴돌고 있기 때문에 땅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오늘날 우리는 뉴턴이 달을 보며 했던 이 고민 덕분에, 달이 지구 주변을 도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원리로 수많은 인공위성을 띄울 수 있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역시, 달이 있었기에 보다 더 빨리 인류 과학의 정설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1915년 그는 질량에 의해 주변 시공간이 휘어질 수 있다는 상대성 이론을 주장했지만 시공간의 휘어짐은 너무 미미해서, 당시의 검출 기술로는 쉽게 파악할 수 없었다. 적어도 태양 정도의 육중한 질량 덩어리는 되어야 그 정도를 파악해볼만 했다. 아인슈타인의 가설에 따르면 태양은 육중한 질량으로 주변 시공간을 왜곡하고 있을 것이고, 그 왜곡된 시공간 주변을 날아오는 먼 별빛의 경로는 휘어져 들어오고 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휘어진 시공간을 지나오는 별빛의 경로가 함께 휘어지면서, 하늘에서 별이 실제와 다른 자리에서 보일 수 있다는 중력 렌즈 현상을 예측했다.
하늘에서 태양 바로 옆에 있는 별을 본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던 때 천문학자 에딩턴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달에 의해 태양만 쏙 가려지는 개기일식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1919년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로 떠난, 에딩턴의 원정대는 각 장소에서 개기일식이 진행되는 동안 태양의 자리 주변에서 보이는 별들의 위치를 정확히 관측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예견한 대로 살짝 다른 위치에서 별이 목격되는 중력 렌즈 현상을 확인했다. 달이 있었기에, 인류는 이 소설같았던 상대성 이론을 보다 더 빨리 검증할 수 있었던 셈이다.

우주로 떠나고 싶게 만드는 자극제, 달

거대한 달은 인류에게 우주로 날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품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늑대인간이 보름달을 보면 흥분하는 것처럼, 인류도 달을 보면서 우주로 떠나고자 하는 욕구를 품기 시작했다. 달은 인류가 한번쯤 여행을 해볼 만한 그나마 현실적인 거리에 떨어진 목적지였다. 쥘 베른의 〈달 세계로의 여행〉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달로 날아가는 우주여행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비로소 인류는 1969년 아폴로 11호 미션을 통해 달에 발자국을 남기게 되었다.
달이 없었다면, 바다와 육지를 가득 채운 풍성한 생태계가 자리 잡기 어려웠을지 모르며 깜깜한 밤하늘 아래 놓인 인류는 지금보다 하늘에 덜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자연 위성에 대한 고민도, 사과를 얻어맞으며 달은 왜 하늘에 떠 있는지 궁금해한 뉴턴의 고민도, 달을 활용해 검증했던 우주 방사선과 상대성 이론의 역사도 아마 없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달이 없는 심심한 하늘 아래 우리는 우주로 날아가고자 하는 꿈 역시 꾸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 많은 천문학자들은 지구처럼 주변에 덩치 큰 위성을 거느리고 있어야, 그 행성에 생명이 진화하고 인류처럼 고등 문명으로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란 고민도 함께하고 있다. 그래서 단순히 다른 별 주변을 맴도는 외계행성만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외계행성 곁에 지구의 달과 같은 커다란 자연 위성도 함께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지구가 존재할 수 있게 해준 가장 특별한 우연은 오늘 밤 우리 하늘을 밝게 비춰줄 저 거대한 달의 존재가 아닐까? 수십 억 년 전 지구로 테이아가 다가오지 않았다면, 그 충돌로 날아간 파편들이 모여서 저 거대한 달이 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