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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과학자들의 버킷리스트
노벨상 그 이상의 가치 ‘이그노벨상’
괴짜 과학상인 ‘이그노벨상’은 고정관념이나 일상적 사고로 생각하기 어려운 발상, 기발하고 이색적인 업적에 가치를 두고 수상자를 정한다. 남들은 엉뚱한 상상력이라고 치부하는 생각도 그들은 죽기 전에 해내겠다는 집념으로 무수한 실험에 돌입한다. 실제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 중 노벨상을 수상한 인물도 있다. 모두가 갸우뚱했던 발견을 하나의 연구로 증명한 이그노벨상의 가치에 대해 알아보자.
사람이 먹는 항우울제를 먹으면
대합조개도 기분이 좋아질까?
완벽한 홍차 한 잔을 끓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에일 맥주와 마늘과 샤워 크림이 거머리의 식욕에 미치는 영향은?
속옷만 신경 써서 만들어도 방귀 냄새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황당해 보이는 이 물음들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찾기 위해 연구를 반복하는 사람들!
바로 이그노벨상의 수상자들이다.
평범함을 거부한 빛나는 호기심 천국
이그노벨상 수상자들은 일반적으로 궁금해하지 않거나, 궁금해도 그냥 지나치는 질문들에 진지하게 대응하고 몰두한다. 호기심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집념, 그리고 고정관념 없이 경계를 넘나드는 무한한 상상력의 가치를 인정하는 상이 ‘이그노벨상’이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발간하는 유머 과학잡지 <기발한 연구 연감>의 편집장인 마크 에이브러햄스는 1991년 노벨상을 패러디해서 이그노벨상을 만들었다.
“최고의 과학자나 운동선수들을 위한 상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
최악의 영화나 패션을 위한 상도 존재한다. 하지만 자석으로 개구리를 공중에 띄운 과학자나 가라오케를 발명한 사람,
머피의 법칙의 기원이 된 사람을 위한 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1991년까지는.”
-마크 에이브러햄스
‘재현해서도 안되고, 재현할 수도 없는 연구에 주는’ 이그노벨상의 이름은 기발하고 유별난 연구를 하는 사람이 받는 만큼 ‘비천한’, ‘보잘것없는’이란 뜻의 이그노블(ignoble)과 노벨(Nobel)을 결합해서 탄생했다. 이 상의 포스터에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뒤집어진 채로 들어가 있는데, 이는 획기적이고 기발한 이그노벨상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991년부터 매년 가을이 되면 하버드 샌더스 시어터에는 노벨상을 받았던 과학자들이 이그노벨 시상식에 참석해서 물리학, 화학, 생물학, 의학 등 10개 분야에 오른 수상자들에게 상패를 건넨다. 괴짜와 천재가 공존하는 자리인 만큼 시상식 풍경 또한 예사롭지 않다.
수상 소감은 단 1분만 허용되는데, 그 이상 넘어갈 시 계단에 앉아 있던 스위티 푸(Sweetie Poo)란 여자 아이가 “그만해요! 지루해요!”라고 말이 끝날 때까지 소리를 지른다. 대부분의 수상자가 웃으며 연단을 내려오는데, 때로는 아이와 똑같이 소리를 지르거나 간식을 주며 양해를 구하는 경우도 있다.
지루한 건 참을 수 없다는 이그노벨상의 또 하나 독특한 문화는 참석한 관중에게 언제나 야유할 수 있는 용도로 종이비행기를 나눠준다는 것이다. 거드름을 피우거나 무게를 잡는 수상자에게는 어김없이 종이비행기가 날아들기 때문에 시상식의 엄중한 분위기는 있을 수 없다. 그 외에도 자신의 연구와 걸맞게 코스프레를 하고 나타나는 수상자도 있다. 실제 2016년 이그노벨상 생물학상을 거머쥔 영국의 디자이너 토머스 트워이츠는 알프스에서 염소의 모습으로 염소와 생활하며 생태를 연구했던 그 복장 그대로 시상식장에 등장해 화제가 됐다.
기어코 해냈노라! 끈기와 집념으로!
이그노벨상 이름의 유래나 포스터만 보면 이상하고 괴짜스럽게 비춰질 수 있지만 나름 수상의 기준이 명확한 편이다. 첫 번째는 ‘사람들을 웃게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그 자리에서 엉뚱한 상상력을 공유하며 즐겁게 웃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 수상 기준은 이그노벨상의 궁극적인 가치와 연결돼 있는데, 바로 웃음 뒤에 ‘그리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물음을 던짐으로써 우리의 삶에 영감을 주는 것은 물론, 엉뚱한 상상을 세상에 증명해내는 시도와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 끈기와 집념으로 울림을 갖는다.
‘관절을 꺾으면 관절염이 생긴다’는 속설을 입증하기 위해 미국의 의사 도널드 엉거는 50여 년간 매일 왼손 손가락의 관절을 꺾어 오른손과 비교함으로써 무관하다는 걸 밝혀냈으며 알래스카 불곰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평생을 바쳐 갑옷을 개발한 사람도 있다. 무모해 보여도 자기만의 버킷리스트를 이뤄 내기 위해 도전한 결과, 세상에 이로운 변화를 이끌기도 하고, 위대한 과학적 성과를 내는 경우도 있다.
발냄새와 치즈 냄새가 비슷한 점을 이용해 치즈로 말라리아모기를 유인하는 효과를 입증한 교수의 연구는 빌게이츠 재단의 투자를 받아 케냐와 아프리카 일부에서 말라리아모기를 잡는 장치를 만드는데 사용되기도 했다.
2000년 자석으로 개구리를 공중부양 시키는 연구에 뛰어든 과학자 안드레 가임은 개구리가 반자성을 띠는 것을 증명하며 이그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는데, 그는 10년 후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을 손쉽게 추출하는 방법을 발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기도 했다. 엉뚱한 상상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견의 밑거름이 될 수 있기에 이그노벨상은 이 시대의 돈키호테들의 괴짜스러움을 응원하는 것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수상자들의 발상에 웃음을 터트리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연구 과정의 진심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자신의 블라인드 스팟에도
빛이 들어옴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이그노벨상의 진정한 취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