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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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퀴! 나로 시작하는 여행,
하늘이 내린 순백의 숲을 거닐다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
새해를 맞으며 설렘의 크기만큼 괜스레 걱정의 추도 무거워지기 마련이다.
들썩이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나와의 고요한 독대를 나누고 싶다면, 순백의 자작나무숲만한 곳이 없다.
때로는 평안을, 때로는 굳은 다짐을 싣고 오르는 여행객의 발걸음을 나무는 조용히 들어줄 뿐이다. 겨울눈까지 더해진 신비로운 풍광 속으로 뽀드득 뽀드득 느릿한 여정이 시작됐다.
Text. Photo. 정철훈(여행작가)
자작나무숲에 깃든 현실판 겨울왕국
‘눈’하면 떠오르는 여행지가 몇 곳 있다. 덕유산과 태백산이 산정에 올라 장쾌한 설경을 감상하는 직관적인 공간이라면,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눈’과 ‘자작나무’의 조합으로 완성된 감성적인 공간이다. 솜처럼 하얀 눈을 고이 품은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그래서 이 겨울, 조금은 들뜬 여행자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코끝에 맴도는 진한 커피 향처럼.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1989년 조림을 시작해 2012년부터 일반에 개방됐다. 자작나무의 수명은 40~50년. 그러니 이곳 자작나무숲도 어느덧 노년의 나이로 접어든 셈이다. 장년의 중후함을 지나 노년의 원숙함으로 농익은 숲. 산림청에서 지금의 자작나무숲을 대신할 후계림을 인근에 조성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쉬이 가시진 않는다.
원대리 자작나무숲을 만나기 위해서는 약간(?)의 발품을 들여야 한다. 가장 일반적인 원정임도와 별바라기숲을 따라갈 경우 대략 3km쯤 걸어야 한다. 치악산이나 북한산 산행과 비슷한 거리다. 아무 정보 없이 불쑥 찾아간다면 시작도 하기 전에 기가 질릴 만하다. 한데,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자작나무숲에 이르는 길은 일반 등산로와 달리 임도가 대부분이어서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다. 게다가 오르막은 전체 구간의 절반이 채 안 되는 1.2km 정도. 덕분에 평균 경사율이 무장애 보행로와 비슷한 13%(7.4°) 수준이다.
안내소에서 시작된 임도는 별바라기숲 입구에서 예쁜 오솔길로 모습을 바꾼다. 지금부터가 진짜다. 임도를 걷는 동안 만난, 예닐곱 그루씩 무리 지어 있는 자작나무에게도 쉽게 눈을 떼지 못했는데, 사방이 온통 자작나무라니.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촘촘히 식재된 자작나무 탓에 햇살이 스미지 못한 숲은 한낮인데도 조금 어둡게 느껴질 정도다.
원대리 자작나무숲의 랜드마크인 ‘숲속교실’은 600m쯤 이어지는 별바라기숲을 지나면 만날 수 있다. 숲속교실 앞에 있는 자작나무로 만든 인디언 집은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든 탐방객으로 늘 붐비는 이곳의 대표 포토존이다. 138헥타르 규모로 조성된 원대리 자작나무숲에는 7개 코스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 다양한 난도의 길을 걸어볼 수 있다. 난도가 높은 일부 위험 코스의 겨우 결빙 등의 이유로 동절기에는 입장을 제한하기도 한다.
자작나무숲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추위를 막아줄 장갑과 모자는 필수다.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아이젠을 챙기는 것도 잊지 말 것. 자작나무숲엔 음식물을 판매하는 편의시설이 마련돼 있지 않으니 간단한 먹거리와 따뜻한 음료는 미리 준비하는 게 좋다.
원대리 자작나무숲의 랜드마크 ‘숲속교실’
INFORMATION
원대리 자작나무숲
  • 입산시간 하절기(11~3월) 09:00~14:00
    매주 월화 휴무
  • 입장료 무료
  • 주차요금 5,000원(승용차 기준) 지역 상품권으로 돌려줌
  • TRAVEL TIP 1. 매일 2회(10:00 13:00) 무료 숲해설 프로그램 진행
    2. 편의시설이 없어, 간식과 따뜻한 음료는 미리 챙기기
    3. 눈길 대비, 등산화와 아이젠 지참!
백옥처럼 하얀 수피로 온몸을 감싼, 20m를 훌쩍 넘는 키 큰 자작나무는
고개를 한껏 젖혀야 간신히 끝이 보인다. 어디 한 곳 틀어진 데 없이 매끈하게
뻗은 그 고혹적인 자태에 한동안 넋을 잃고, 나무를, 숲을 바라본다.
덕분에 임도 넓이의 절반이 되지 않은 좁은 길을 걷는 동안 지루할 새가 없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기거했던 백담사 외경
만해 한용운 선생의 흔적이 깃든 백담사와 만해마을
험준하기로 이름난 내설악 깊숙이 위치한 백담사는 신라 진덕여왕 때 자장율사 한계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크고 작은 산불과 전쟁을 겪으며 운흥사, 심원사, 선구사 등 이름도 여러 번 바뀌었다. 그러다 조선 세조 때 화마를 피하고자 대청봉에서 절까지의 웅덩이 개수를 세어 백담사(百潭寺)라 이름 지은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 선생이 머물며 <님의 침묵>과 <불교유신론>을 집필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모신 극락보전과 화엄실, 관음전 등 기존 건물 외에 만해교육관, 만해연구관 등 만해 한용운 선생의 문학과 불교정신을 구현하는 공간도 마련됐다.
사찰 뒤편 등산로를 이용하면 백담사의 부속 암자인 오세암과 봉정암까지 다녀올 수 있다. 백담사는 백담분소가 있는 주차장에서 7km쯤 떨어져 있다. 영실천을 따라 이어진 보도를 따라가면 2시간쯤 걸리는 거리다. 멋진 계곡을 벗 삼아 걷는 것도 좋지만, 조금 편하게 백담사를 만나고 싶다면 정기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다만,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셔틀버스 운행이 중단될 수 있으니, 사전에 운행 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다.
백담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만해 한용운 선생의 흔적을 되짚어볼 수 있는 공간이 또 있다. 생전의 그처럼 시인이자 승려의 삶을 살았던 무산스님이 주도해 조성한 만해마을이다. 오붓한 산책로를 따라 만해문학박물관과 숙박시설인 문인의 집, 북카페 깃듸일나무 등 만해의 삶과 사상을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특히 입구의 ‘평화의 시벽’은 평화를 노래한 29개국 55명의 외국 시인과 255명의 한국 시인 작품을 동판에 담고 있어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편백 향기 그윽한 북카페에선 만해의 다양한 저술과 함께 그의 사상을 담은 서적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만해문학박물관에는 선생의 수형기록표와 1962년 추서된 건국훈장대한민국장 등이 전시돼 있다. 산책로 끝에는 은모래 고운 북천이 지나 가을볕에 반짝이는 강가 풍경을 감상하기 좋다. 법당을 갖춘 만해사도 한번쯤 둘러볼 만하다. 여느 사찰과 달리 노출 콘크리트 방식으로 지은 만해사는 웬만한 유명 카페보다 세련된 외관이 인상적인 공간이다.
백담사 경내 풍경
만해문학박물관에 전시된 한용운 선생의 흔적들
올해의 건축상을 받기도 했던 만해사
TRAVEL TIP
1. 눈이 많이 내리면 백담사 셔틀 버스 운행이 중단되기 때문에 사전에 확인 필수(편도 기준 2,500원)
2. 북카페 깃듸일나무에는 유료 반신욕기가 있어 얼은 몸을 잠시 녹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