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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바퀴 쉬기

트렌드가 뭣이오?
‘촌’스러워서 ‘힙’하다
러스틱 라이프
무엇이든 가장 앞서나가는 최첨단만 ‘힙’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과거의 유행을 새롭게 재해석한 뉴트로를 지나, 이제 ‘러스틱’이다.
조금은 촌스러운 것이 되려 더 힙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글. 편집실, 참고. <트렌드 코리아 2022>

시골로 가는 도시인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국내 한적한 시골에서 일상을 리셋하는 ‘셀프 유배’가 인기다. 제주가 여전히 가장 인기이지만 강릉, 속초 등 인구 밀집도가 낮은 지방 소도시를 선택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큰 도시에 비해 편의 시설이나 즐길 거리가 많지는 않지만 바이러스 감염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는 것이 선택의 이유다. 여기에 비대면 수업과 원격 근무의 확산, 사회적 활동의 단절로 ‘코로나 번아웃’과 ‘코로나 블루’에 시달리며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도 한몫 거들었다.
유튜브 채널 ‘오느른’은 서울에서 전셋집을 살던 30대 방송국 PD가 출퇴근 세 시간 반 거리의 전북 김제에 폐가를 사들여 시골살이 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채널 운영자인 최별 PD는 함박눈이 내릴 때 멍하니 창밖을 보면서 쉴 때 시골에 잘 왔구나 싶다며 서울에서 직장 생활이 안 풀릴 때 약간의 비빌 언덕과 마음의 여유가 생긴 점이 좋다고 덧붙인다. 사람들은 그의 영상을 보며 ‘내 꿈을 대신 실현시켜줘서 감사하다’라는 댓글을 남긴다.
홍성란 요리연구가는 멸치 사업을 하는 남편을 따라 홍성으로 귀촌했다. 시골살이의 매력으로 어딜 가든 탁 트인 곳을 만날 수 있고 높은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거나 복잡하지 않은 점을 꼽는다. 4살 딸아이와는 키즈카페나 쇼핑몰 대신 산, 바다, 새 농장, 문화재 유적지를 간다. 서울까지는 두 시간 거리로 많이 멀지 않아 서울 일도 병행할 수 있다. 홍성에 거주한 지 4년 차인데 괜히 왔구나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이처럼 평범한 일상마저 버겁게 느껴지는 도시인에게 시골은 따분함을 넘어서는 여유로움과 불편함을 무릅쓰는 날것의 경험이 매력적인 공간으로 다가오고 있다.  

‘촌’스러움 한 방울 더하기

‘러스틱 Rustic’이란 ‘시골풍의’, ‘소박한’, ‘투박한’이란 뜻을 지닌 단어다. 특히 인테리어 분야에서 나뭇결을 그대로 살린 원목가구나 무심한 듯 올려놓은 돌 소품 등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살려 편안한 시골 정취를 자아내는 것을 ‘러스틱 스타일’이라 일컫는다. ‘러스틱 라이프’는 날것의 자연과 시골 고유의 매력을 즐기며 도시 생활에 여유와 편안함을 부여하는 시골향 라이프를 일컫는다. 도시와 완전히 단절되는 것이 아닌 도시의 일상을 조금 덜어내고 소박한 ‘촌’스러움을 삶에 더하는 새로운 지향을 의미한다. 러스틱 라이프는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도시와 시골 생활을 비중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떠나기-머물기-자리 잡기-둥지 틀기’의 4단계로 구분된다.
‘떠나기’는 시골로 여행 가기다. ‘촌캉스(촌+바캉스), ‘옥캉스(한옥+바캉스)’ 등 오래된 시골집이나 한옥에서 휴일을 보내며 한적함과 편안함을 만끽하는 것이다. 강원도 영월의 ‘산골초가펜션’을 비롯해 ‘그랜마하우스’, ‘방아리 코테지’, ‘수리재’ 등은 시골집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숙소들로 새소리, 개구리 오는 소리를 배경 삼아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마솥 밥을 해먹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아무 생각없이 자연에 취할 수 있는 불멍·풀멍·물멍(각각 불·풀·물을 보며 멍하게 있기)이 가능한 ‘뷰 맛집’도 인기다. 풀멍하기 좋은 ‘논밭뷰’가 아름다운 경북 청도는 2018년 70여 개에 불과했던 카페가 2021년 112개로 늘어나며 카페별 특징을 소개하는 ‘카페지도’까지 제작됐다.
‘머물기’는 체류형 여행인 ‘한 달 살기’다. 비현실적인 로망의 실현에 가까웠던 이전의 한 달 살기와 달리 러스틱 바람이 분 요즘의 한 달 살기는 번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일상을 리셋하는 ‘셀프 유배’로 설명된다. 학교·직장·사회활동에 매여 떠나지 못했던 2030세대로 소비층이 확대되고 그 형태 또한 ‘보름 살기’, ‘열흘 살기’ 등 유연하게 변화 중이다. 장소 또한 남들 다 가는 유명한 곳이 아닌 동해·속초·양양·남해 등 전국 곳곳으로 방향을 틀며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원격근무가 활성화되면서 휴가지에서 업무를 진행하는 ‘워케이션’, 자연과 더불어 학교생활을 해볼 수 있는 ‘농촌유학’도 각광받고 있다.
세 번째 ‘자리 잡기’는 머무르는 여가로, 도시와 농촌 모두에 자신만의 거점을 마련하는 듀얼 라이프를 통해 러스틱 라이프를 실현할 수 있다. 특히 3040 젊은 층이 빈집이나 셰어하우스 등을 이용해 일주일 중 4~5일은 도시에 머물다가 2~3일은 시골을 찾는 ‘오도이촌’ 혹은 ‘사도삼촌’의 이중생활에 영위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캠핑의 변화도 이해할 수 있다. 장기간 동안 캠핑장의 한 공간을 대여하는 ‘장박캠핑’이나 차를 끌고 훌쩍 떠나는 ‘차박’으로 보다 일상적으로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한다.
마지막 ‘둥지 틀기’는 농사, 집, 경험 등 자기만의 러스틱한 라이프스타일을 지어내는 것이다. 도시에 없는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고자 이농·이촌하는 청년들이 쇠락하던 시골 마을에 트렌디한 요즘 감성의 로컬가게를 열어 지역의 분위기를 바꿔놓고 있다. 나만의 집을 짓는 것은 둥지 틀기의 완성이다. 앞서 소개한 ‘오느른’의 운영자 역시 115년 된 폐가를 충동구매하여 리모델링하게 되면서 시골살이를 시작했다.  

오롯이 소박한 나만의 작은 사치를 누리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도시 생활에서 활력을 잃은 주인공이 고향인 시골마을에 돌아와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작은 숲(리틀 포레스트)’의 ‘작다’는 단지 공간의 소박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오롯이 나만의 여유를 안겨준다는 뜻이다.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는 잠시 누릴 수 있는 여유야말로 최고의 사치다. 누구나 꿈꾸지만 아무나 누릴 수 없기에 새로운 사치, 소위 ‘노멀 럭셔리’ 중 하나가 되었다.
핀란드에서는 번잡한 휴양지가 아니라 한적한 자연 속 오두막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다 오는 것을 최고의 휴가로 여긴다고 한다. 핀란드 관광청은 그 매력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오두막 생활은 모든 핀란드인이 자라면서 경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두막의 소유·임대 여부와는 무관합니다. 오두막에서 지내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핀란드의 오두막 생활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의 매력을 즐기는 것입니다.”
러스틱 라이프의 핵심은 그저 시골식으로 살라는 ‘찐’시골이 아니라, 누구나 실천가능한 ‘친’시골이다. 러스틱 라이프 트렌드는 한국 사회의 행복의 질을 한 단계 더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