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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명사 인터뷰
요리, 사람 사이의 거리를 줄이다
음식을 통해 인류를 통찰하는 ‘요리인류’ 이욱정 PD
이욱정 PD는 함께 밥을 먹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를 넘어 사람 사이의 가장 원초적인 유대라고 말한다.
음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 이후 함께 밥을 먹는 게 어색해지고 동네 밥집이 사라지는 지금의 상황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우려하고 있다.  
글. 편집실 사진. 전재천 Studio TEAM

이욱정 PD 연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인류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런던의 르 꼬르동 블루 요리학교에서 고급 과정을 마쳤다. KBS 다큐멘터리 〈누들로드〉 〈요리인류〉를 기획하고 연출했으며, 현재 서울시의 요리를 통한 도시재생사업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고 있다. 2년여에 걸쳐 10개국을 누비며 제작한 〈누들로드〉 시리즈로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대상과 백상예술대상 TV부문 교양 작품상을 수상했다.

Q

요즘 아주 바쁜 나날을 보내고 계십니다.
근황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푸드 크로니클〉이라는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4주간 해외 촬영을 다녀오고 자가격리를 끝내자마자 오늘 중구 필동상인회와 함께 어린이들에게 도시락을 전달하고 왔어요. 코로나 시국에 전 세계를 누비는데 지금까지 함께 일하는 스태프 중 아무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아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Q

‘요리를 통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필동상인회와 함께한 도시락 전달이 ‘요리를 통한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입니다. 필동의 골목식당 사장님들과 밥차를 꾸려서 인근 다문화 가정 또는 보육원 등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따뜻한 한 끼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회현동 남촌상인회 16개 식당 사장님들과 도시락을 만들어서 명동성당 노숙인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이 자영업자, 그중에서도 골목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시는 분들이잖아요. 손님이 없는 식당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사장님들을 보며 도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도시락을 만들어 마을 축제에서 판매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죠. 그 과정을 〈코로나 19, 이모네 밥차 희망가〉라는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는데 대기업에서 방송을 보고 도시락을 대량 구매해 준 덕분에 노숙인들에게 희망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Q

요리를 통한 도시재생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오래전부터 도시재생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20년 전 이탈리아 볼로냐에 방문해 도시재생 사업을 취재한 적이 있었는데 중세 시대부터 천 년 가까이 이어온 구도심의 오래된 창고나 버려진 건물들을 철거하지 않고 문화시설과 상업시설로 바꿔서 도시 전체가 다시 부활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는 오래된 동네나 건축물의 가치를 오랫동안 몰랐습니다. 빨리 부시고 그 위에 빌딩과 아파트를 새로 지어 올리는데 혈안이었죠. 우리보다 앞서 산업화를 경험했던 유럽의 도시들이 재생사업을 통해 가장 오래되고 낡은 구도심을 매력 있게 바꿔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며 서울에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서울 구도심의 작은 골목 식당들에 눈길이 닿았죠.

Q

도시에서 식당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도시는 낯선 이들이 함께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탄생했어요. 그리고 낯선 사람들이 이렇게 가까이 앉아서 대면하는 장소가 바로 식당 혹은 카페입니다. 때로는 초면에 같은 테이블에앉기도 합니다. 친구들이나 지인과 약속을 잡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도시 내에서 가장 단위의 사회생활이 이루어지는 곳이식당입니다. 식당은 도시의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리는 소통의 매개체죠. 함께 밥을 먹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를 넘어 사람 사이의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유대입니다. 그런 점에서 식당은 도시의 문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인프라입니다.

Q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서 ‘골목식당이 사라지면 집에서 간편식만 먹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코로나19이후 ‘밥 한끼 먹을래?’라는 인사가 어색해졌는데,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할까요?

코로나19로 식당들이 문을 닫고 영업을 중지하면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일 장소가 사라졌습니다. 식당을 가더라도 혼밥이 대부분이죠.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간편식으로 때우는 경우도 많습니다. 30대 이상의 세대는 학창 시절 친구들이랑 어울려 밥을 먹고 가족과 식탁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게 당연했어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데 10대 청소년과 20대 청년들은 그렇지 않아요. 누군가와 같이 앉아 밥을 먹는 자체가 어색하고 낯설 거예요. 처음 보는 사람과는 더 그렇겠죠. 유튜브를 보면서 혼밥하는 게 더 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 어떻게 될지 조금 걱정도 됩니다. 서로 대화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면서 양극화, 공동체 와해로 이어질 것 같은 위기를 느낍니다.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당분간 ‘요리를 위한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Q

그동안 〈누들로드〉, 〈요리인류〉 등 요리를 통해 인류를 통찰하는 작품을 꾸준히 제작하셨습니다.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저는 요리 다큐멘터리만 만드는 게 아니에요. 디자인, 교육, 병원, 자동차 등 다양한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계획입니다. 소재는 다르지만 관통하는 질문은 같습니다. ‘인류는 어디에서 시작했고,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고,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끊임없이 질문하여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제작 중인 작품은 〈푸드 크로니클〉로 티빙에서 처음 제작하는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입니다. 인류의 식탁을 바꾼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만두, 쌈, 타코 같은 ‘싸먹는 음식’, 피자, 전, 팬케이크 등 ‘납작한 음식’, 케이크, 샌드위치, 스시 등 ‘레이어를 가진 음식’ 등 9가지 형태로 구분하고 이 음식들이 어떻게 전 세계인을 매료시켰는지 연대기를 살펴봅니다. 이 음식들 간에는 공통점이 있어요.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점, 빨리 만들고 빨리 먹을 수 있는 점, 손으로 먹는 점, 휴대와 이동이 편한 점, 온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점이죠. 이를 통해 21세기 인류가 지향하는 바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이번 시리즈의 중요한 인사이트입니다. 오는 8월에 공개되니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Q

이동이 편하다는 점도 포함되는군요.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해 주시겠어요

모빌리티, 바퀴의 발명이 인류의 식탁을 바꿨습니다. 바퀴가 만들어지면서 먼 곳에 있는 재료를 공수할 수 있게 되었고, 멀리까지 외식이 가능해졌죠. 자동차가 없던 시절에는 집이나 동네 식당 밖에 가지 못했지만 자동차로 인해 동네를 벗어나 맛집을 찾아다닐 수 있게 됐죠. 외식과 레스토랑 문화를 발달시켰습니다. 〈미슐랭 가이드〉가 탄생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바퀴는 어떻게 인류의 식문화를 바꾸었나’도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겠네요. 넥센타이어에서도 관심을 가져 주시면 좋겠습니다.(웃음) 비단 식탁뿐만이 아닙니다. 자원을 찾아, 절대적인 존재를 찾아 또는 사랑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며 문명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모빌리티는 인간의 중요한 속성이자 인류 문명의 근간입니다.

Q

마지막으로 〈헬로우넥센〉 독자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코로나19와의 전쟁이 빨리 종식되기를 바라며, 그날이 온다면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떠나는 걸 추천합니다. 기왕이면 해외가 좋겠네요. 평소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미루지 말고 떠나세요. 그리고 그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고 음식을 꼭 맛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탈리아, 프랑스 또는 아시아, 중남미의 어떤 나라, 도시라도 상관없습니다. 낯선 식당에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요리를 맛보며 팬데믹 이후의 가장 특별한 한 끼를 경험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