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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바퀴 쉬기

마음 처방전
무기력한 일상에 사람의 온기는 필수!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어느 날 문득 ‘나는 지금 무얼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나만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루하루는 지나가고 나는 생활의 부속품같이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이럴 때는 휴식이 필요하고 머릿속을 비워 두고 나를 어루만져 줄 책이 필요하다.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그 누구의 삶이 내 안에 들어오면 가끔씩 그리운 친구가 생각나듯 떠오르는 대목이 있을 것이다.
글. 노희정 북 큐레이터, <오늘도 책을 권합니다> 저자
순례주택
유은실 지음, 비룡소 펴냄, 2021. 2. 25
“수림아, 어떤 사람이 어른인지 아니?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이야.”

유능한 세신사였던 김순례 씨가 마흔다섯 살에 1층 양옥 집을 사서 허물고 건물을 지었는데 그 건물이 바로 순례주택이다. 사람들은 순례 씨가 때를 밀어주고 번 돈으로 산 집이라고 하여 때탑이라고 한다. 순례 씨는 임대료를 시세에 따라 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만 받아 순례주택에 입주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1층 상가에는 미용사 조은영 씨가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고 2층 살림집과 함께 들어와 살고 있다. 3층에는 순례 씨 직장동료였던 이군자 씨 부부와 다른 호수에는 박사이면서 대학 시간강사인 허성우 씨가 살고 있다. 4층에는 혼자인 영선 씨가 산다. 201호에 살았던 박승갑 씨는 순례 씨의 20년 연인이었는데 급성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 박승갑 씨의 재개발 아파트에 대학 시간강사인 사위와 딸이 들어와 살면서 불편해진 박승갑 씨는 순례주택에 방을 얻어 나가게 된다. 하지마 박승갑 씨 딸 가족이 쫄딱 망해 박승갑 씨가 살던 순례주택 단칸방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이 소설은 박승갑 씨 손녀 수림이의 시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유은실 작가의 톡톡 튀면서도 살아있는 캐릭터들의 대화가 일품이라고 할 수 있다. 순례주택을 평소 업신여겼던 수림 엄마의 못 말리는 대소동과 못 배웠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순례주택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일은 좌충우돌 통쾌하기 그지없다. 읽다 보면 어느새 우리가 순례주택으로 들어가 순례 씨의 따뜻함을 느끼게 되고 순례 씨가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이 생각나는 작품이다.

오늘 오후는 평화로울 것이다
최경화 지음, 소동 펴냄, 2021. 10. 21
“자, 차를 타면 즐거운 일이 생기는 거야!”
우리는 강변, 해변, 들판을 쏘다녔다. 물론 나중에는 병원도 갔다.
그러나 연두에게 차는 놀러 가기 위한 과정의 첫 번째 단계일 뿐이었다.
“덜컹거리는 기계에 올라타면 인간들과 하루 종일 같이 있을 수 있어!”
연두는 차 문을 열면 신나서 뒷좌석에 펄쩍 뛰어오르곤 했다.

저자는 포르투갈에서 사는 한국인으로 포르투갈 남자와 결혼해 살고 있다. 개가 있어야 행복한 영장류이면서 개와 산책하는 틈틈이 그림을 보고 글 쓰고 바느질을 한다고 자기 소개를 하고 있다. 이 책은 2020년 팬데믹 기간에 병든 노견과 부부가 함께 한 달 동안 포르투갈에서 프랑스, 독일, 스페인에서 지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연두는 태어날 때부터 발가락 수가 모자라는 개였다. 유기견 입양소에서 누군가 포기했던 6살 된 연두를 데려와 10년만 같이 살자고 했는데 5년 만에 겨드랑이에 지방종이 생겨 비만세포증과 간염으로 다리를 절뚝거리고 통증을 느끼게 된다. 노견의 마지막 한 달을 자동차로 여행하고 어느 평화로운 오후에 하늘나라로 보내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이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고 있었다. 반려동물 여권과 수의사 소견서 등 연두를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함께 국경을 넘고 머물면서 찍은 연두의 사진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연두의 다리가 불편해 계단 있는 집에 머물 때는 안아주고 연두가 고통을 느끼고 식음을 전폐하면 동물병원을 찾아 치료를 해주고 식단을 달리 해보기도 했다. 일기형식으로 일정을 알려주고 도착하는 곳의 위치를 지도로 안내해 주면서 장소에 대한 설명과 만난 사람, 주변 자연과 건축물 등을 사진과 글로 친절하게 소개해 주었다. 그러면서 연두의 마음을 헤아려 되도록이면 뛰어다니고 친구들을 만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고통만 느끼는 연두를 데리고 포르투갈로 돌아와 병원에서 편하게 보내주고 호수가 보이는 소나무 아래 좋아하는 장난감과 함께 묻어준다. 저자는 우리에게 예상하는 대로 삶이 흘러가지 않으니 함께 하는 시간들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마흔, 부부가 함께 은퇴합니다
김다현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2021. 7. 21
“엄마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고 책을 읽으며 보냈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행복하다.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지는 대신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사회생활을 돌이켜 보면 그렇게 보낸 시간들로 얻어낸 것들이
공부에서 얻은 것보다 더 긍정적으로 내 삶에 작용해왔다.”

집도 없었고 주식도 몰랐던 부부가 마흔에 은퇴를 준비하는 과정을 써놓은 이야기로 현실 직장인 다현 씨의 7단계 은퇴여정이 자세히 소개된 책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은퇴는 시간에 이끌려가고 사람에 지친 직장을 그만 두는 것이지 끝은 아니라고 한다. 인생 2부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다닌 저자는 점점 지치기만 하고 건강도 잃어가고 있었다. 남편은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에서 일했던 경력으로 저자가 일하는 포털 서비스 만드는 회사에 오면서 만나게 되었다. 가정주부로 살아보고 싶은 남자와 항상 일탈을 꿈꾸는 여자가 만나 ‘부부 공동 은퇴 프로젝트’를 만들어 남편이 먼저 퇴직을 하고 6개월 후 저자가 퇴직을 하게 된다. 일단 마흔에 은퇴하고 후회하지 않을까라는 불안감과 주변의 시선을 감당하는 부분은 실감이 났고 그래도 이 부부가 마음을 다잡고 자금계획에 들어가면서 부동산, 주식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실천에 옮겨 자리를 잡아가는 것은 신기했다.
두 부부는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직장인이었지만 지금은 살림초보 부부이다. 그래도 서로를 존중하며 역할을 나누어 자기 길을 다시 찾아 나가는 과정을 저자의 글을 읽고 있다 보면 순간 열심히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저자는 퇴직 후 직업란에 아무것도 적을 수 없어서 서글펐다고 하지만 지금은 쫀득쫀득한 글을 쓰는 브런치 작가로 많은 팬들을 가지고 있다.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장명숙 지음, 김영사 펴냄, 2021. 08. 18
“사는 게 특별하지 않다. 배고프면 간단히 요기하고 추우면
따뜻하게 입고 더우면 시원하게 입고 자고 싶을 때
작은 내 한 몸 편안하게 누울 잠자리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욜로족, 파이어족, 모두를 응원한다.
독립적으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다면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고 건강한 구성원으로 살아간다면
누가 그들 삶에 손가락질할 수 있단 말인가.”
“기성세대는 인생을 숙제 풀듯 살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축제처럼 살게 해줍시다.”

이 책은 한국인 최초 밀라노 패션 유학생, 서울 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의상 디자이너, 지금은 구독자 수 100만 명을 향해 달려가는 유튜버 밀라논나 장명숙의 못다 한 이야기이다. 1952년생 멋쟁이 할머니라고 하지만 나이만 들었을 뿐 생각은 젊은이들보다 훨씬 깨어 있고 유연하다. 그래서 이 책은 모든 세대에 위안과 희망을 준다고 할 수 있다. 방송에서 인생보따리를 조금은 풀었지만 성공보다는 성장을 권유하는 어른으로서 할 말을 책에서 조근조근 풀고 있다. 그녀의 검소한 라이프 스타일과 유행을 따라 하지 않는 소신 있는 생활습관, 자연스레 습득한 봉사 등 하나하나 우리 마음에 스며들어 그녀의 이야기들은 ‘밀라논나에게 스며든다’라는 의미로 ‘밀며든다’라고 한다.
인생 후반부에 들어간 저자이지만 그녀는 남이 보더라도 괜찮은 삶보다 내가 보더라도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게 낫다고 책에서 얘기하고 있다.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나에게 예의를 갖추면서 살아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도 알려주고 있다.
사람과 물건, 옷에 대한 생각, 가족과 친구, 후배들에게 건네는 이야기 등 평소 들려주고 싶은 자기 이야기를 조근조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녀만의 어록들이 너무 멋져서 힘들 때마다 책을 열어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