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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가 뭣이오?
X세대가 돌아왔다, X-teen is Back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X세대가 돌아온다. 그런데 이제 10대(Teenage) 감성을 가미한 엑스틴이다.
지금까지는 MZ세대에 밀려 관심을 덜 받았지만, 새롭게 사회의 중심 세대로 진입하는 이들에게 다시 집중해야 할 때다.
글. 편집실, 참고. <트렌드 코리아 2022>

도무지 알 수 없는 X세대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중심에는 MZ세대가 있다. 정치·사회·경제·문화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트렌드를 이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 초~2000년대 초에 태어난 이들은 조직보다 개인의 행복을 최우선이라고 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데 거침없다. 그런데 국가보다 개인, 조직보다 나에 집중하는 게 MZ세대가 처음은 아니다. Z세대가 태어나기도 전인 1990년, 세기 말을 뒤흔든 X세대가 있었다.
X세대는 1970년대 전후로 태어나 19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세대로, 미지수를 뜻하는 알파벳 ‘X’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세대’라는 의미에서 붙었다. X세대라는 표현은 1991년 캐나다 작가 더글러스 코플랜드(Douglas Coupland)가 쓴 소설 에 처음 등장했다. 이전 세대의 가치관과 문화를 거부하는 이질적인 집단이지만 특별하게 정의하기 어렵다는 뜻에서 X를 붙인 것이다.  
X세대의 가치관이 형성될 시기인 1980년대와 1990년대의 대한민국은 정치·경제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격변기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나고 그 이듬해에는 88서울올림픽이 개최됐다. 1980년대 후반 국가주도의 경제개발 정책의 성과가 드러나고 저유가·저금리·저달러의 3저 현상으로 유례없는 경제 호황을 누리면서 자율과 개방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 X세대는 꼭 필요하지 않아도 즐거움과 자기표현을 위해 소비하는 첫 세대가 됐다. 대중문화 역시 급물살을 탔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대중가요계는 10대 취향으로 재편됐고 팬덤 문화가 탄생했다. 여기에 PC와 삐삐는 놀이와 커뮤니티의 영역을 기존과는 비교할 수 없을 규모로 확장시켰다. 이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한 즈음에는 초고속 인터넷망이 깔렸고 30대에 접어들어서는 아이폰과 카카오톡이 출시됐다. X세대는 민주사회로의 이행,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 대중문화의 폭발적 확산 등 현대사회의 전환점을 모두 경험하고 변화의 중심에 서 있었다.
경제적·문화적으로 풍요로운 10대 시절을 보낸 X세대가 자유롭고 개인주인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들은 ‘야타족’, ‘오렌지족’ 등 숱한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지금의 MZ보다 사회에 더 충격을 던졌다. 기성세대들은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스러워했고 온갖 이슈의 중심에는 늘 그들이 있었다. 통굽 신발에 배꼽티를 입은 짧은 머리의 여자, 긴 치마를 입고 귀걸이를 한 남자 등 X세대의 패션을 보고 ‘일본 문화의 영향을 받은 젊은이들의 한심한 작태’라고 비판하는 기성세대들에게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라고 당당히 응수했다. 한 광고회사는 X세대를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는 개성파였으며 경제적 풍요 속에 성장했던 세대로 경제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었던 세대”라고 정의했다. 조국의 발전을 위해 절약과 근검을 모토로 자신을 희생해온 이전 세대와 확연히 달랐다.  

경제적·문화적으로 풍요로운 10대 시절을 보낸 X세대가 자유롭고
개인주인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통굽 신발에 배꼽티를 입은 짧은 머리의 여자,
긴 치마를 입고 귀걸이를 한 남자 등 X세대의 패션을 보고
‘일본 문화의 영향을 받은 젊은이들의 한심한 작태’라고 비판하는
기성세대들에게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라고 당당히 응수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엑스틴 

엑스틴(X-teen)은 1970년대 생으로 10대 자녀와의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10대 같은 X세대를 뜻한다. 예전에는 40대라면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꼰대 이미지가 강했지만 40대가 된 X세대, 엑스틴은 여전히 젊다. 젊을 때부터 새로운 것을 적극 시도한 덕분에 나이 먹어서도 시대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인다. 여전히 ‘나’에게 집중하며 개성을 존중하고 자신의 취향과 주장을 거리낌 없이 표현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들의 자유롭고 진보적인 DNA를 Z세대인 자녀들에게 그대로 물려줬다.
엑스틴은 자녀와 어울리는데 익숙하다. 10대 자녀에게 필터를 이용해 셀카 찍는 법을 배워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설정하고, 숏폼 영상 플랫폼인 ‘틱톡’에 올릴 영상을 함께 찍기도 한다. 부모와 자녀가 같이 춤을 추거나 챌린지를 하는 이 영상들은 #가족틱톡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올려져 2021년 3월 기준 조회 수 4,390만 건을 기록하기도 했다. 엑스틴을 대상으로 구독 패키지에 포함되기를 원하는 서비스의 종류를 물어본 결과, 자녀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콘솔 게임기 대여나 게임 구독을 원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엑스틴이 자녀와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이유는 가치관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엑스틴은 자녀에게 공부와 높은 성적을 요구하는 대신, 자녀 스스로 원하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가능성을 지원한다. 최근 유튜브와 소셜미디어에서 종종 볼 수 있는 ‘10대 사장’, ‘Z세대 사장님’의 뒤에는 자녀가 처리하기 힘든 세금 문제를 해결하거나 사업 관련 조언을 해주는 든든한 엑스틴 부모가 있다.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에 관심을 갖는 게 MZ세대라면 이들을 정착하게 하는 것은 엑스틴이다. 엑스틴은 온·오프라인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트렌드에 관심이 높으며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를 받아들일 자세도 되어있다. 앞서 5060세대가 가족을 위한 소비에 집중했다면 엑스틴은 나를 위한 소비’도’ 놓치지 않는다.  
40대 남성들이 메이크업이나 피부관리 제품을 구매하거나, 20~30대 여성들이 주로 구입하는 프리미엄 소형차 브랜드인 MINI 구매 비중의 41%를 4050세대가 차지한다. 덕질에도 거침없다. 방탄소년단의 팬덤인 ‘아미’임을 당당하게 드러내며 소속사의 주식을 굿즈 모으듯이 사모으고, 커뮤니티에서 방탄소년단의 콘텐츠를 함께 즐긴다. 모든 디지털 문물의 변화를 겪은 세대답게 이커머스 업계에서도 이들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패션쇼 플랫폼 ‘지그재그’는 2021년 하반기 오직 중장년층을 타깃으 로 한 전용 앱을 선보였고, 중장년층 전용 패션 플랫폼 ‘퀸잇’은 론칭 9개월 만에 누적 다운로드 수가 140만 건을 넘어섰다. ‘마켓컬리’의 전체 이용자 중 40대가 35.4%를 차지한다.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에 관심을 갖는 게 MZ세대라면
이들을 정착하게 하는 것은 엑스틴이다.
엑스틴은 온·오프라인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트렌드에 관심이 높으며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를 받아들일 자세도 되어있다.

엑스틴, 대한민국의 허리가 되다

조직 내에서는 MZ세대가 부상하면서 세대 간 중재자로서 엑스틴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과거 윗세대들이 살아온 배경과 언어를 이해하면서도 아래세대처럼 탈권위와 탈권위를 외치는 세대로서 두 세대의 특징을 잘 이해하고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IMF와 금융위기를 겪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한 엑스틴은 마냥 호의적이고 낭만적인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깨닫고 조직에 수직적인 위계질서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인정받기 위해 윗세대의 관행을 이행하는 것은 물론 업무가 디지털화·정보화되면서 선배들의 노하우가 쓸모 없어지자 스스로 프로세스를 만들어냈다. 그러다 보니 A부터 Z까지 세세하게 정리한 매뉴얼과 가이드에 기반한 ‘마이크로 매니징(Micro Managing)’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MZ세대들은 엑스틴에게 명확하고 친절한 매뉴얼의 업무지시를 요구한다. 윗세대는 자신들처럼 팀을 확실하게 이끌지 못하는 40대 직원들이 답답하고 못마땅하게 여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낀 세대’, ‘식빵 세대’라고 불리는 엑스틴에게 조직은 실무와 더불어 책임(관리)도 맡아서 해야 하는 ‘플레잉 코치’의 역할까지 요구한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가검열도 한다. 검색창에 ‘꼰대’를 가장 많이 검색하는 연령은 50대가 아닌 40대이며, 꼰대력 테스트를 많이 시도하는 연령도 엑스틴이다. 이래저래 심리적·육제적 부담이 높고 피로가 쌓여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X세대는 여전히 중요하다. 엑스틴이 40대에 접어들면서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칠 ‘허리’ 집단으로 성장하고 있다. 우선 엑스틴은 인구 규모가 크고 지출이 많은 세대다. 2021년 7월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중 40대 비중이 15.9%로 50대 다음으로 많다. 또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덕에 전 생애에 걸쳐 가장 높은 지출이 이루어진다. 당분간 대한민국 소비시장은 엑스틴이 이끌 것이다. 혁신과 진보의 DNA를 가진 새로운 중년 소비자로서 이들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는 또 한 번 패러다임의 격변을 맞이할 것이다. X세대, 엑스틴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