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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24h 빙글뱅글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법
Imagination In reality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아이디어를
잠자리 잡듯 낚아채야 하고 기록해야 한다.
작은 아이디어를 큰 아이디어로 만드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걸 다음 단계로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지 다음 단계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글. 데니스홍 로봇공학자, 로멜라 연구소장

데니스 홍 Dennis Hong은 세계가 주목하는 최고의 로봇공학자로 현재 미국 UCLA 기계공학과 교수이자 세계적인 로봇 연구의 메카 ‘로멜라(RoMeLa)’를 운영하고 있다. 특유의 뛰어난 상상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로봇을 개발해 2009년 글로벌 과학 전문잡지《파퓰러사이언스》에서 ‘젊은 천재 과학자 10’에 선정되었다. 기존의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는 기발한 로봇뿐 아니라 인공심장 개발 프로젝트, 무인 택배 로봇 개발 프로젝트 등 인간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와도 협력하며 새로운 혁신을 이끌고 있다.

작은 아이디어를 큰 아이디어로

나는 항상 연필과 ‘아이디어 노트’라고 부르는 조그마한 노트를 꼭 들고 다닌다. 일상을 관찰하다 보면 언제 어디서 아이디어가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주변의 아무 종이에나 메모를 남길 때도 간혹 있는데, 낱장의 종이라 잊어버리기 일쑤여서 메모한 종이를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저장해두기도 한다.
새벽 서너 시쯤 침대에 누워 잠이 들락말락 할 때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재미난 생각들을 ‘보기’도 한다. 이상한 삼차원 도형이며 여러 색깔의 다양한 모양들이 동동 떠다니다가 서로 엉키고 뒤집어지고 돌아가면서 신기한 동작의 매커니즘이 만들어진다. 찰나의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기 위해 협탁에 아이디어 노트와 작은 LED 전구가 달린 펜을 두고 잔다.
매일 눈을 뜨자마자 협탁 위 노트를 열어보고 “지난밤에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던 거야?”라며 수수께끼 풀 듯 메모를 해독한다. 그러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아내면, 바로 서재로 달려가 컴퓨터 데이터베이스에 정리를 해놓는다. 특별히 사용한 곳도 없고, 어떻게 쓰이게 될지 모르는, 그저 단순히 재밌는 아이디어에 그칠 때도 많다.
이렇게 정리된 아이디어들은 필요한 순간에 유용하게 사용된다. 연구 제안서 등을 쓸 때 연구 과제가 내 연구 분야인지 평소 관심 있던 주제인지를 살피고 아이디어 노트와 데이터베이스를 뒤지며 적합한 게 있는지 찾아본다. 그렇게 찾아낸 아이디어를 이렇게 저렇게 구성하고 다듬어서 하나의 솔루션을 만들어 연구 제안서를 제출한다.
다리가 세 개 달린 로봇 스트라이더도 이렇게 탄생했다. 대학원생 때 공원에서 한 아주머니가 여자아이의 머리를 땋아주는 모습을 보며 머리카락을 세 갈래를 나누어 저글링하듯 손가락 사이로 왔다 갔다하는 모습이 신기해 게임이나 퍼즐에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연필과 노트를 꺼내 스케치하고 간단히 메모했다.
이후 버지니아테크 교수가 되어 미국 해군연구소에서 새로운 종류의 기동성 높은 로봇에 관한 연구 제안서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대학원 시절의 아이디어 노트를 꺼내 머리를 땋는 스케치를 발견했다. 복잡하지만 자연스러운 그 움직임이 로봇의 다리 운동으로 겹쳐 보였다. 다리가 꼬이는 문제는 한 발짝씩 디딜 때마다 몸체가 180도 뒤집는 걸로 해결했다. 하나가 풀리자 기관총에서 총알들이 ‘따따따따’ 나오듯 이후 과정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 《우주전쟁》에 나오는 기괴한 삼발이 외계인 로봇과도 흡사하고 카메라 삼각대처럼 생긴, 다리가 세 개지만 사람처럼 걷는 스트라이더는 이런 과정을 거치며 만들어졌다.

생각을 바꾸면 새 길이 열린다.
이렇게 다른 해결책을 찾고 시도하며
직접 만지고 부수고 고쳐본 경험들은
지금 내가 로멜라에서 기상천외한 로봇을
만들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듣고 배우고 협업하라

머리 땋는 모양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듯이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만 한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주변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아무리 창의적인 아이디어라도 실제로 만들어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걸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지 다음 단계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야 한다. 배움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결국 아이디어를 완성하는 것은 체계적인 지식이다.
의학도 로봇공학이 필요한 분야 중 하나다. 나는 영화 <아이언맨> 속 토니 스타크의 아크 원자로처럼 체내에서도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작동하는 ‘체내 반영구 인공심장’을 개발하고 있다. 몸 곳곳에 부착한 여러 센서에서 들어오는 신체 정보로 심장박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만들 예정이다. 이러한 인공심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로봇공학뿐 아니라 의학 전문 지식도 필요하다. 어떤 기능이 있는 로봇을 만드느냐에 따라 기계, 전기, 전자, 컴퓨터 공학, 재료, 생물 등 수많은 학문과 접목해야 한다. 따라서 해당 학문의 전문가와 팀을 만들어 협업하는 것이 좋다.
협업하기 위해서는 자기 전공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은 물론,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대화가 될 만큼 깊이 있고 폭 넓은 지식을 갖춘 ‘T자형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개발할 로봇에 어떤 분야의 지식이 필요한지,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추론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 문제를 해결해줄 전문가를 찾는 것도 한층 수월해진다. 그만큼 더 좋은 팀을 짤 수 있고, 프로젝트 성공 가능성도 높아진다.
하지만 협업이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체내 반영구 인공심장 프로젝트의 경우, 공학계와 의학계에서 사용하는 용어 자체도 다를뿐더러 의사들은 로봇 쪽 기술을 모르고, 로봇공학자들은 의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정확히 캐치하지 못한다. 결국 소통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의사들은 로멜라를, 로봇공학자들은 병원을 주기적으로 견학하는 과정을 프로그램에 포함시켜 보다 긴밀한 소통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더 재미있게 상상하고 생각을 바꿔라

나를 움직이는 것은 열정, 재미, 이런 것들이다. 나의 에너지는 재미있는 것, 열정적인 것으로부터 나온다. 나를 설레게 하고 신나게 하는 것들을 보면 그 안에 푹 빠져든다. 내가 자꾸 불가능한 일에 뛰어드는 것도, 상상 속 기상천외한 로봇들을 만들어내는 것도 결국은 거기서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만든 로봇을 설명할 때도 ‘이 로봇이 재미있는 건’이란 표현을 자주 쓴다. 그만큼 새롭고 기발하다는 뜻이다. 이미 만든 로봇을 업그레이드하는 것보다는 누구도 상상 못 한 로봇을 만들어 세상에 선보이는 일이 좋다.
사람들은 나를 두고, 내 로봇을 두고 창의적이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창의성은 나 혼자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있다. 그걸 이끌어내고 발전시키는 방법을 잘 모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로멜라 브레인스토밍 세션’을 창안했다. 브레인스토밍 세션에는 규칙이 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비판할 수 없다!” 비판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분명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꺼내는 순간에는 유용하지 않다. ‘이런 말을 해도 될까? 반응이 별로면 어쩌지?’,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웃음거리가 되면 어떻게 해.’ 이렇게 비판이 두려워 자기방어에 골몰하는 사이 기발한 생각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브레인스토밍 세션이 모두 좋게 끝나지는 않는다. 주제에 대한 해결책을 얻지 못할 때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머릿속 생각들을 어떻게 유용한 아이디어로 발전시키는지를 많은 사람과 함께 경험하고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을 바꾸면 새 길이 열린다. 이렇게 다른 해결책을 찾고 시도하며 직접 만지고 부수고 고쳐본 경험들은 지금 내가 로멜라에서 기상천외한 로봇을 만들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발상을 전환해 문제를 바라보는 순간 ‘아이디어’와 만날 수 있고 찾을 수 있다. 선입견을 지우고, 같은 것도 다른 틀을 바라보고 사고할 줄 알아야 한다.
로봇이 해야 할 일은 매우 복합적이다. 특정한 용도만 염두에 두고 개발하면 로봇 기술을 발전할 수 없다. 사람을 돕고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의 범위는 사실 매우 무궁무진하다. 우리의 예측 범위 밖에 일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로봇이 더 많은,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게 하고 싶다. 그런 기술이 구현되는 상상을 한다.